플렉서블 이코노미에 대해

  • 2015-04-28 (modified: 2025-04-17)

Robert Reich 교수의 How the New Flexible Economy is Making Workers’ Lives Hell을 읽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1. 날씨, 교통상황 등을 분석하여 2) 레스토랑/호텔/매장 등에 고객이 얼마나 올지 실시간으로 예측하여 3) 종업원을 항시 대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시(just-in-time)에 딱 필요한만큼 시간제로 고용하는 방식을 플렉서블 이코노미(flexible economy)라고 함
  2. 고용인 입장에서는 비용을 절감하니 좋지만 피고용인 입장에서는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지 않으니 지옥과 다름 없음 (출근길에 갑자기 문자가 와서 “오늘은 오지 마세요”라고 하는 식)
  3. 피고용인이 정규적이고 예측가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연방법으로 보장해야함. 그게 안된다면 적어도 더 강한 안전망이 필요

요즘 최적화 내지는 자동화라는 주제를 놓고 유사한 논의가 많다.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원인 분석 또는 해결책엔 동의하기가 어렵다.

최적화는 문제가 아니다

최적화를 해서 문제가 발생하니 최적화를 막자는 식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최적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플렉서블 이코노미의 혜택을 고용인이 아니라 피고용인이 누린다고 가정해보자.

  • 아침에 일어났는데 회사에 가기 싫다. 통장 잔고도 좀 넉넉하고 당분간 큰 지출이 없을 것 같아서 출근 시간 1시간 전에 회사에 전화를 해서 “오늘부터 보름 동안 무급휴가 쓰겠습니다”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 지하철로 30분 거리인 카페에 알바하러 가야한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다보니 마침 동네 카페에서 급히 알바를 구하고 있다. 게다가 시급도 더 높다. 원래 일하던 카페에 전화해서 “이제부터 다른 곳에서 일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집 앞 카페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무언가가 유연해지는 것 그 자체는 좋은 것이다. 문제는 그 권력 또는 정보가 소수의 고용인들에게 집중되어 있는지 다수의 피고용인들에게 분산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또 최적화를 통해 추가로 발생한 가치를 소수의 고용인들이 챙기는지, 다수의 피고용인들에게도 고르게 돌아가는지의 여부도 문제이다.

세상의 모든 일자리가 플렉서블 이코노미 방식으로 바뀌고, 언제 어디에 어떤 일자리가 생기고 사라지는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돈이 필요하면 현재 가용한 일자리 중 자신이 판단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을 골라서 필요한 만큼만 일을 한다. 게다가 최적화로 인해 발생한 추가적 가치가 고르게 분배되기 때문에 기존에 비해 시급도 훨씬 높다.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만 할 수 있다면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자동화도 문제가 아니다

위 글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니 자동화를 하지 말라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일이 사라지면 좋은거 아닌가? 문제는 일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일과 함께 수입이 사라지는 것이다. 수입이 사라지는 이유는 자동화를 통해 발생한 이득을 고르게 분배하지 않고 소수의 경영진이 다 챙겨가기 때문이다.

위 글에서 1) 피고용인이 정규적이고 예측가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연방법(federal law)으로 보장해야하고, 그게 안된다면 2) 적어도 더 강한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1)은 좋지 못한 임시방편일 뿐이고 2)를 지향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최적화나 자동화를 통해 얻어진 이득의 증가 혹은 낭비의 감소를 안전망(safety-net) 구축에 쓴다면 모두가 지금보다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안전망 구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자동화세(automation tax)를 도입해야하는지, 기본소득제를 시행해야 하는지 등은 구체적 실행 방법에 대한 것이니 일단 논외로 하자. 참고로 나는 인간이 소득을 위해 노동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믿으며,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한다. (참고: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가 아니다

수입이 고정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분석도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피고용인 입장에서 수입을 늘리고 싶을 때 일을 더하고, 일을 덜하고 싶으면 수입을 줄이는 식으로 양방향 모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는 편이 좋다. 문제는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 자체가 아니다. 수익을 늘일지 줄일지를 대체로 피고용인이 아니라 고용인이 정한다는 점, 게다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정해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이것도 결국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지출이 고정적이니 수입도 고정적이어야한다는 처방은 방향이 완전 반대로 되었다. 올바른 방향은 수입을 고정하는게 아니라 지출도 고정적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고정지출을 최소화하고 지출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주어진 사회가 지출과 수입이 모두 고정된 사회에 비해 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에 좋지 않을까.

이 모든 논의는 두터운 안전망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깔아야 성립한다. 두터운 안전망은 뭘로 제공하나? 자동화와 최적화를 통해 얻어진 가치로. 역시나 구체적 실행 방법은 논외이다.

결론

최적화, 자동화로 인해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최적화나 자동화 그 자체가 문제의 근원은 아니다. (거의 언제나 그러했듯) 최적화나 자동화 등 새로운 기술에서 파생되는 권력을 소수가 쥐고 흔드는 것이 문제이다.

최적화, 자동화를 하지 말자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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